옛 언약과 새 언약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옛 언약이 불완전
했다면, 그것을 없애고, 새 언약을 세우면 될 일이다. 그러나 로마서에서도 강조되었듯, 옛 언약
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 언약을 예비하는 것이며, 또한 새 언약을 통해 완전하여
지는 것으로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이야기된다. 나는 이것이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성에
대한 관점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에서는 아담과 예수로 대표되는 원죄와 회복의 두 요소로
도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인류의 보편적인 죄성이
생겨나게 되었다면, 다시 고귀한 한 사람, 즉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 아예 무죄의 상태, 완전의
상태로 인류를 회복시켜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인간에
내재한 상이한 두 가지의 보편적인 요소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특성이라기 보다는, 인간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지닐 수 밖에 없는 것들이라고 여겨진다.
아담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요소는,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중심으로 개인적인 경험의 세계를 구성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필연성이다. 그리고 이 세계는 실질적인 감각과 경험의 세계이기에 매우
강력하다. 인간은 자신의 관점과 의지를 허락받았다.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구성해갈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뜻과는 달리, 아담의 세계에서
선악과는 매우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하나의 대상으로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세계는
실상 불완전하다. 대부분 우리의 감각이라는 것은 절대적 기준이 없는 상대치에 불과하다. 또한
경험이라는 것 또한 주변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서 일어나는 순간적 현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느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던 학생은 한동안 스스로 매우 우수한 학생이라 생각하겠지만, 경쟁이
치열한 다른 학교에서는 중위권의 학생일지도 모른다. 또는 자신의 운동 능력을 비관하는 평범한
운동 선수는, 공부로 전향해 매우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불릴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인간이 이러한 수많은 불완전한 지식과 끊임없이 관계 맺으며 자신의 세계를 형성해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이러한 특성은 세계에서 인간을 고립시키게 되며, 스스로를 고유한 그 세계의 주인의 자리에 앉히게 된다. 그러나 그 세계는 실제적으로 결함투성이여서 진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인간을 수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의 수레바퀴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인간의 죄성이 끊임없는 반사적인 개별화의 작용이라면, 반대로 인간 회복의 요소는 영원성과 보편성에 대한 추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별화된 세계에서 인간은 주인된 개체로서 존재하지만 그 속에 내재된 치명적인 한계는, 그것이 다분히 허황된 기반을 가진 세계라는 것 외에도, 그것이 죽음을 통해 소멸해버릴 한시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그 세계는 죽음과 함께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극도로 개별화된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개별화된 세계의 약점을 드러내고, 인간이 다시금 참된 영원성을 소원하며 나아가게 하는 통로가 되어준다. 결국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부활은, 개별화된 세계의 필연적인 소멸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원한 세계의 회복으로도 보여질 수 있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자발적인 죽음의 과정이다. 자신의 개별화된 세계와 관점을 포기하고, 고독한 왕국에서 주인노릇을 하는 대신, 자발적으로 신과 영원의 관점을 선택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살아가며, 진리와 보편성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비록 우리가 한 개체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밖에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불어 보편적인 영원과 사랑의 세계 안에 거하고 있음을 느끼고 믿게 된다.
결국 위의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다른 의미에서 모두 인간에 내재된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는 자유의지가 어떤 방향으로 발휘되느냐에 따른 양면성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율법을 중심으로 한 옛언약은 개별화된 개인 중심의 세계의 한계를 드러내주고, 새 언약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