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은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로는 일단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향하고 있다는 믿음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종교의 형태 안에 장구한 세월동안 축적되었을 인류의 지혜를 배우고 싶은 바램이다. 인류의 시작점에서, 그것이 어떤 본질적인 이유 또는 상황적인 이유였던지간에 종교적인 믿음과 사유가 발생하였고, 그것은 문학, 과학, 정치, 철학 등 거의 모든 학문과 인류의 깨달음과 동일선상에서 발전해 나갔을 것이다. 즉 인간은 그 사유와 창조적 활동에 있어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종교적으로 집중시켰던 것이다. 태초 이래 현대까지 존재하는 많은 심리, 교육, 철학, 문학, 과학적 물음들의 에너지가 모두 종교를 향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의 욕망, 기만, 위선 등 많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다양한 에너지 또한 포함될 것이다. 가령 그리스 문학의 걸작으로 치송받는 서사시 '일리아드"에서는 등장 인물 들의 사랑, 미움, 용기, 배반 등이 모두 그리스의 참견하기 좋아하는 다양한 신들의 작용으로 설명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면들이 단지 어리석다면 그것이 걸작으로 전해지지는 못하겠지만, 그 안에는 문학적인 아름다움과 인간성에 대한 살아있는 통찰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신화와 종교의 색채를 띠고 있을 뿐이다. 유명한 신화학자 조지 켐벨은 이러한 면을 일컬어 '천의 얼굴을 한 영웅', 또는 '신의 가면'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한 면에서 봤을 때, 물론  스스로도 인정하는 나의  종교적인 경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성경의 가치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 가치있는 지혜와 통찰, 나아가서는 진리를 담은 그 무엇이 있다는 것조차 개인적으로는 인정하고 싶다. 더구나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세계의 종교로 이어져온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어떠한 종교라도 발전 과정에서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보편 종교로 성장한다는 것은 비록 다양한 왜곡과 대중과의 타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그 도전을 극복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령 초기 기독교가 영지 주의 노선과의 대립 속에서 '성육신'의 믿음을 지켜낸 것은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것은 현실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의 문제이며, 예수의 인성을 인정함으로 인해 기독교는 현실을 긍정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개선해 나갈 원동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와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성경은 매우 흥미있고 가치있는 텍스트인 셈이다. 텍스트라는 말은 무척 불경한 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내가 성경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사실상 나는 하느님께 무례하거나 불경할만한 용기는 없는 사람이지만, 16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쓴 책을 바라보는 대는 어느 정도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약에 대해서는 짧은 인터넷 지식을 조금 섭렵했을 뿐인지라 소개하기 부끄럽지만, 전반적으로 기원전 3000년 전의 수메르 문명과 수메르의 영향을 받은 바빌론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는 것이 학문적 정설인 듯 하다.
수메르 신화에 포함된 지우슈드라의 신화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거의 완전하게 일치하며,창세의 과정은 바빌론 신화와 유사하며, 6일 동안 창조하고 7일 째에 쉬었다는 이야기, 에던 동산 등에 관한 이야기,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 등에서 많은 일치점을 보인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욥기, 시편, 아가 등에서도 비슷한 부분을 보인다고 한다. 자세하게 설명할 정도의 지식이 되지 않아 구약 연구의 권위자 피터 플린트 교수의 주장을 소개한다.

  "구약이 히브리어 문헌으로 기록된 것은 바빌론 유치 이후 그러니까 BC 516년 이후의 일이다. 그만큼 바빌론 유치는 그들에게 민족 아이덴티티를 각성시켰고 고등문명과 접촉할 기회를 제공했고 특별히 역사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신화적 상상력이 풍부한 유대인들에게 역사란 문학이었다. 그런데 문학적 상상력은 국가나 민족의 한계를 초월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이야기는 완전히 바빌론의 신화를 각색한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이 창안한 것이 아니다. 그 신화의 원형을 정확하게 바빌론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참고로 피터 플린트 교수는 예수의 죄없음에 대해, 그의 신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사실 예수 당시 까지도 현대에 알고 있는 성경이라는 개념은 없었다고 한다. 각기다르게 전승되던 것이 통합되고,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된것은 예수 후대의 일이라고 한다.
 또한 빛과 어둠의 대립의 개념은 이스라엘 주변국 중 하나였던 페르시아에서 기원전 6세기 경 발생한 조로아스터 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간략히 소개하면 아후라마즈다라는 빛의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는데 여기에 반기를 드는 어둠의 신이 존재한다. 아후라마즈다는 세상을 돕기 위해 천사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였는데, 이 세상은 빛과 어둠의 전장이며 그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내부이다. 메시아의 출현을 예견하며 최후의 전쟁 후 선한 인간을 부활시켜 영생을 준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가 이란 토속의 태양신인 미트라 신과 결합하여 미트라교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초기 기독교와 대립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 대해 단적으로 기독교가 미트라교를 표절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거나 미트라교에서 기독교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미트라교는 초기 로마에서 기독교를 승인했던 콘스탄티누스에게도 한 때 영향을 끼쳤다고 하며 이러한 내용이 다빈치 코드에서 영화화 되기도 했다고 한다. 미트라 교와 기독교의 유사점은 다음과 같다.
 

① 미트라는 12월 25일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② 그는 위대한 방랑교사였다.
③ 그에게는 열 두 제자가 있었다.
④ 기적을 행했다.
⑤ 미트라는 태양신의 아들로서 미트라 성 삼위일체설을 형성하였다.
⑥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일어났다.
⑦ 미트라 교도들은 그가 부활한 날에 축제를 베풀었는데, 그 날은 지중해의 여러나라에서 춘분축제 였으며,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이 되었다.
⑧ 사람들은 그를 선한 목자로 불렀다.
⑨ 그는 길이요, 진리요, 빛이요, 구세주 혹은 메시아로 여겨졌다.
⑩ 미트라를 기리는 거룩한 날은 예수가 나기 수 백년 전부터 sunday 즉 일요일이었으며

    그 날은 또한 主의 날이기도 하였다.

 사실 이러한 공통점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화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가. 육체를 가진 구세주이며 신의 아들이다. 

나. 아버지는 하느님이고 어머니는 동정녀이다.

다. 3명의 양치기가 오기 전인 12월 25일 외양간(동굴)에서 태어난다.

라. 신도들에게 세례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마. 예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바.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사.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아.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이 하늘에 올라간다.

자.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차. 죽음과 부활은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제임스 프레이저와 조지 켐벨의 주장대로 당시 이집트와 아시아권에서 죽음과 부활을 소재로 한
신관념을 공유했다는 설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이러한 유사점을 악마의 장난이라고 언급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은 기독교의 발전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지평이어야지 기독교의 본질을 규정짓는 단순한 사고로의 귀결은 가장 위험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한 위의 내용들은 어느 정도 선입관을 가지고 도출한 내용일 수 있기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시리스 신화를 대강 찾아보았는데 실지로 그냥 봤을 때는 예수와의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기독교의 민감함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은 역사적 실체로서
다가오는 일대 사건으로 각인되야만 하며,  그러하기에 오늘의 우리 존재 속에서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성립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픽션이 가미되었다하러다도 그것이 본질 자체를 훼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분명 예수님이 사셨고, 말씀하셨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현실적 댓가를 바라기 이전에 이미 목숨을 걸었다. 예수를 위해서였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어떤 식으로든 해석되어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당시의 문화적 흐름과 결부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들 그것을 거짓됨으로 매도할 수 만은 없는 일이다.
 스스로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내용이기에 소개한다는 것이 조심스럽다. 또한 사실 나는 위의 내용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기독교가 주변 문화권과의 상호 작용과 영향 속에발전하였을거라는 극히 상식적인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마음이다.  



Posted by 하낙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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